조건이 유리해도 지는 이유 – 손자병법으로 본 전략의 본질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병력이 많거나 지형이 유리한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조건을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드느냐입니다.
『손자병법』을 읽으며 느낀 점은 분명합니다. 분석만으로는 이길 수 없고, 분석이 실제로 힘을 발휘하려면 그 분석이 현실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세(勢)’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란 단순히 기세나 운이 아닙니다. 전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흐름, 즉 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조성되는 구조적 조건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좋은 전략과 전술도 그에 맞는 세를 만들지 못하면 실행되지 못합니다.
리와 그랜트 – 유능함보다 중요한 것은 세를 만든 사람
미국 남북전쟁에서 리와 그랜트는 자주 비교됩니다. 로버트 E. 리 장군은 지휘력, 판단력, 인격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지휘관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군사학교 수석 졸업생이었으며, 전쟁 경험도 풍부했습니다.
반면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은 전쟁 전에는 눈에 띄는 경력이 없었고, 초기 전투에서의 전술도 비판받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결과는 북군, 즉 그랜트가 이끌던 쪽의 승리였습니다.
그랜트는 북군이 가진 병력과 보급, 전략 자원의 우위를 단순한 조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현실에서 유리하게 작동하는 흐름으로 전환했고, 지속적인 압박과 주도권 장악을 통해 남군의 숨 쉴 틈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더 유능했던 리가 아니라 세를 만든 그랜트가 역사의 승자가 된 것입니다.
분석은 전략의 시작이고, 세는 그 전략을 현실로 옮기는 힘입니다
전쟁을 앞두고는 반드시 분석이 필요합니다. 손자는 이를 ‘계(計)’라고 하며, 전쟁의 유불리를 따지기 위한 항목들을 제시합니다. 지형, 병력, 사기, 지휘관, 명분 등 객관적인 요소들을 비교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죠.
하지만 분석만으로 전쟁은 이겨지지 않습니다. 계획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그것이 전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흐름, 바로 그것이 세(勢)입니다.
세는 분석된 내용을 현실의 조건에 맞게 조절하고, 상대의 틈을 파고들며,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 분석은 있었지만, 세는 없었습니다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는 병력 5만과 기병 7천이라는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카이사르는 병력 2만, 기병 1천에 불과했습니다.
누가 봐도 폼페이우스가 유리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포위 전술을 준비했고, 기병을 전면에 내세워 적을 밀어붙이는 정석적인 전술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대의 구상과 대응을 무시한 채, 자신이 가진 조건만을 기준으로 움직였습니다. 즉,
“카이사르의 생각과 능력, 구상을 분석 과정에서 깨버리고, 정형화된 틀 속에서 전력을 계산해 그대로 병사를 밀어 넣은 것”입니다.
그 결과, 기병은 정면에서 카이사르의 고참 보병에 막혔고, 전선은 붕괴되었으며, 폼페이우스는 전투 내내 적극적인 반격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반면 카이사르는 자신이 가진 조건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상대의 예상을 깨는 방식으로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기병이 무너진 자리에 보병을 투입해 전선을 돌파하고, 상대의 허점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카이사르는 기존의 분석 틀에 머무르지 않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흐름, 즉 ‘세’를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전투는 분석만 있었던 폼페이우스가 아니라, 세를 만든 카이사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결론.
전략은 단순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건이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 수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분석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전략이 아니라 현실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세’를 만들어야 완성됩니다.
조건을 읽고 흐름을 만든 자, 바로 그 사람이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